김은경 시누이 폭로글의 쟁점 두개!...남편 죽음과 재산 빼돌리기 < 정치·사회·경제 < 기사본문

김은경 시누이 폭로글의 쟁점 두개!…남편 죽음과 재산 빼돌리기 < 정치·사회·경제 < 기사본문

김지나씨, 미주한국일보에서 캡처
김지나씨, 미주한국일보에서 캡처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시누이가 쓴 글이라고, 지인과 독자들이 보내준 글을 보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인데 출처가 없었습니다. ‘가짜뉴스가 흔히 그렇듯 글 내용은 너무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신문에 게재하려면, 과연 김은경 시누이가 쓴 게 맞는지 진위 여부가 우선이었습니다, 일단 떠돌고 있는 그 글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글은 김지나씨가 10카카오 브런치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김지나씨는 브런치에 자기 코너를 갖고 글을 써오고 있었습니다. 그전에 그녀가 쓴 글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바로 이 날짜에 혁신위원장 김은경의 노인 폄하는 그녀에겐 일상이다라는 제목으로, 김은경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글을 올린 겁니다.

김지나씨는 폭로 글에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도미한 지 20년이 되었고 저와 남편은 사업을 하고 있고 아이 셋을 건강하게 키우고 있으며 미국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미주 한국일보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고 자신에 대해 밝혔습니다.

본지는 필자의 진위를 확인해본 결과 충분히 믿을 수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지나씨는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사업하는 남편,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작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2020년 미주한국일보가 주최한 문예공모에서 수필로 당선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미주한국일보에는 그녀에 대해 첫 작품집 킴스 패밀리 인 아메리카(Kim’s Family in America)’를 펴낸 그는 본보 오피니언에 김지나의 살며 살아가며의 칼럼니스트로 맹활약 중이라고 했습니다. 서울 풍문여고, 덕성여대를 졸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무역업을 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의사인 큰딸과 법학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작은 딸, 중학생인 아들을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김은경 시누이라고 밝힌 김지나씨에 대해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본지에 그녀의 폭로글을 게재했습니다.

하지만 이 폭로글은 시누이 김지나씨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입니다. 집안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정말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사문제는 바깥에서는, 3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올케와 시누이간 불화는 어떤 집안에서는 거의 ‘원수’인 경우도 종종 봅니다이 때문에 이번 사안은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하지만, 김은경 위원장은 현재까지 이 폭로글에 대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김지나씨는 며칠 전 노인폄하 논란을 일으키고 남편 사별 후 18년간 시부모님을 모셨고 작년 선산에 묻어 드렸다. 그래서 어르신에 대해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산 적은 없다고 말한 내용을 보고서 이는 도를 넘는 행위이고 이런 사람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며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밝혔습니다.

김지나씨는 “(김은경) 남편이 살아 있을 때를 포함 단 한차례도 시부모를 모시고 산 적이 없고 공경심은 커녕 18년동안 김은경에게 온갖 악담과 협박을 받으셨고 돌아가시면서도 쉬이 눈을 감지 못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명절은커녕 자신의 남편 제사에도 한번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남편 사별 후 18년간 시부모님을 모셨다는 그런 새빨간 거짓으로 우리 가족 모두를 기만한 파렴치한 김은경이기에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제3자의 눈에는 이런 김은경 위원장의 이중성도 놀랍지만, 다른 두 가지 쟁점이 더 다가왔습니다.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첫째는, 김은경 남편의 죽음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김은경 재산 형성(빼돌리기)에 관한 겁니다.

먼저 김은경의 사별한 남편과 관련된 부분은 이렇습니다.

<김은경은 1992년 제 오빠와 결혼을 했습니다.

둘은 이문동에 있는 한국 외국어 대학교 법대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부부는 공부를 위해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아이는 저희 부모님이 맡아 키우셨습니다. 오빠가 먼저 귀국해서 아버지 밑에서 사업을 배우고 김은경은 만하임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에 귀국했지요.

오빠는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하면서 공부하는 아내를 위해 독일로 돈을 보내고 아이를 부모님과 키우는 기러기 아빠가 되었어요. 귀국 후 대학교 강사라는 기회를 갖고 그 뒤로 교수라는 명함을 얻게 되었는데 오빠의 재력과 양육의 도움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고 그 당시에 부부는 자랑삼아 이야기했습니다.(중략)

저희 부모님은 대를 이어야 하는 손주라며 최고의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셨고 공부하는 며느리에게 힘내라는 손편지를 셀 수 없을만큼 보내셨습니다. 박사 학위를 당당히 받고 귀국 한 김은경은 학교 일이 바쁘다며 시댁 일에 등한시하더니 손자까지 길러주신 시부모와 갈등이 심해졌고 말끝마다 60세가 되면 이혼할 거라는 말을 공공연히 흘리며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지고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사건은 20061월에 일어났습니다.

오빠가 자신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집에 아이들과 아내가 같이 있고 초저녁이었고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가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우리 가족은 부검을 원했지만, 아내인 김은경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김은경이 묘사한 그 날의 상황은,

오빠가 제 무릎을 베고 누워서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침이 내 무릎에 흐를 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들어갔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하지만 사고가 있는 직후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제 겨우 서너 살이 된 둘째 아이의 반응은,

엄마랑 아빠가 막 싸웠어. 그래서 아빠가 화가 나서 뛰어내렸어

, 어떤 말이 진실일까요?

그 당시 오빠의 경제적 상황은 이랬습니다. 친정 아빠는 전기사업을 시작으로 소방과 관련된 특허를 9개 가지고 계셨고 특허 된 제품으로 승승장구하셨던 참에 오빠의 도움으로 날개를 다셨습니다. 오빠는 그 덕으로 세무조사를 받아야 할 만큼 재산이 불어났고 그 당시 강남에 있는 아파트와 빌라를 매입했습니다. 활발하고 사업 수단이 좋은 덕에 경제적으로 가정에 충분한 부를 가져다주었고 아내인 김은경은 오로지 학업과 강의에만 전념하면 될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는데 갑자기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집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

200명이 넘는 오빠 친구들이 장례식에 왔습니다. 한결같이 하는 말은 친구가 이렇게 많은데 자살을 한다고?’ ‘다음 주에 골프 약속이 있는데 이럴 수가..’ ‘항상 웃고 다니고 돈도 잘 쓰는 친구인데 이런 일이?’ ‘자식 사랑이 대단한 친구인데 자식 앞에서?’ 장례식장에 모인 친구들의 한결같은 말로 의심의 꼬리를 이어갔습니다. 절대 믿기지 않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김은경은 오빠가 떨어져 죽은 그 순간부터 장례가 끝난 우리가 본 어떤 순간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 침을 흘리며 사랑한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는데 어떻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을까요? 장례가 끝난 바로 다음 날 남편의 사망 신고를 한 건 물론이고 오빠가 타고 다니던 고급 차를 바로 처분하더군요. 그리고 그 집에서 아이들과 무서워서 살 수 없다며 그 당시에 제일 잘 나가던 강남 서래마을로 서둘러 이사를 했습니다.>

시누이 김지나씨의 글에 의하면 김은경 위원장은 남편의 죽음에 관련돼있다는, 남편의 자살에 의문을 표시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범죄얘기가 됩니다.

다음으로 김은경의 재산 형성(빼돌리기)에 관한 대목입니다.

<더욱 황당한 일은 어수선한 틈을 타 아빠의 사업체를 자신의 친동생 이름으로 바꾼 일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사업체는 오빠가 죽기 직전 시아버지의 이름에서 오빠의 이름으로 전환되어 있었고 죽고 나니 곧바로 김은경의 친동생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아빠는 즉시 시정을 요구하고 법에 호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어찌 손을 써 볼 수있는 방법이 없더군요. 치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일이고 워낙 법적으로 잘 아는 김은경이라 우리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사업체를 통째로 빼앗긴 저희 부모님은 어찌 되셨겠습니까?

하나뿐인 아들을 그것도 그렇게 반듯하게 키운 아들을 잃은 고통도 모자라 두 분이 그동안 땀 흘려 일구어 놓은 사업체까지 며느리가 가로채 갔으니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그 충격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요즘 흔한 노인성 치매가 아닌 한마디로 너무 심한 충격을 심적으로 받아 정신을 놓아버린 거지요. 손을 쓸 수 없는 정신적인 병인지라 먹는 약도, 돌볼 방법도 없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 흘러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모셔지고 아버지 또한 기력이 다하셔 시골로 터전을 옮기셨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18년을 사시다가 2년 전 어머님을 먼저 보내시고 작년 겨울, 끝내 자살한 아들이 너무도 그리운 아버지는 자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선산에 묻혀 드렸다는 말을 했는데요, 남편 자살 이후 시부모의 사업체까지 빼돌린 며느리가 왜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왔겠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사별한 남편의 시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며느리 노릇을 한다 라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겠지만, 잘난 금감원 부원장이라는 타이틀로 보내온 부의금을 챙겨가는 모습을 본 우리는 그만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흙 한 줌 뿌리라는 말에 손사래 치며 거절을 한 장본인이 김은경이고 이번 노인폄하 논란의 시작이 된 그 아들 또한 눈을 부라리며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흙 한 줌 넣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노인폄하 사태를 보면서 역시 인간은 본성을 숨길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집안 내 형제간 재산분쟁은 흔히 벌어지지만, 위의 폭로글처럼 재산 빼돌리기가 사실이라면 단순히 재산 다툼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 다 이 추문을 알게 됐습니다. 물론 완전히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고, 한쪽(시누이)의 일방적 주장입니다. 김은경 위원장은 어떤 식으로든 이 폭로글에 대해 입장을 내놓아야 하겠지요. 

*김지나씨 폭로글을 보지 못한 분들은 아래 관련기사를 클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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